양혜규.이솝 대담
이솝
하이트 컬렉션, 2016년
대담자: 양혜규
양혜규: 병원일기라는 작품에 대해 먼저 좀 얘기해 주세요? ‘노트’라고 하셨는데, 사실 상당수의 드로잉이 포함되어 있죠?
이솝: 병원일기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약 한달 간 병원에 머물렀던 기간의 기록입니다. 총 46페이지에 드로잉 21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간, 일기, 사소한 증거, 이렇게 세 파트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공간’이라는 파트에서는 5평 병실 공간을 간단하게 스케치 하였고,‘일기’는 21페이지 분량의 드로잉과 글로 구성되었습니다. 드로잉의 내용은 주로 병원 안에서 환자들과 어머니의 심리를 달래주거나 상처를 아물게 해주는 가상의 보조 장치들이였습니다.‘사소한 증거’ 파트는 작은 약봉투, 식사기록일지 등이 보여주는 병원 일상의 기록입니다.
양혜규: 매우 건조하게 달랑 병상 3개나 그려진 병실의 평면도로 보이는 드로잉 위에 ‘5평공간의 가능성’이라고 적혀있는데요, 혹시 이 가능성을 좀 설명해 주시겠어요?
이솝: ‘5평 공간의 가능성’은, 이 비교적 작은 공간에서 앞으로 펼쳐질 병원 생활을 암시하기위해 적었습니다.
양혜규: 병원일기는 2003년 작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12년 전 작업이죠? 젊은 작가에게 12년이란 비교적 긴 시간이지요? 혹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병원일기가 가지는 현행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 현행성을 본인의 개인사 뿐 아니라 시대적 혹은 세대적인 맥락에서도 좀 밝혀 주시면 흥미로울 듯 합니다.
이솝: 2003년에 어머니의 심장수술로 처음 병원생활을 경험했고, 약해진 어머니의 몸에 대한 기억이 나고요... 병원일기는 당시의 위로와 용기, 젊음과 늙음, 몸과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고, 약하고 아픈 것들을 보듬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미술의 언어로 치유 하고자했던 마음이 담긴 작업으로, 제한된 공간 안에서 여러 상상력을 펼친시간이었습니다. 미숙하고 어려웠던 시간을 다시 펼쳐 봄으로써 작업의 시작점에서 현재까지 변화해온 시간을 경험 해보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한번은 써 보았을, 일기라는 형식은 사적인 성격이 강해서 보통은 잘 공개하지 않죠.그러나 스스로를 위로했던 글을, 이제는 남들과도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공유하면서 나아가 용기와 성장과 평행, 기억과 재현을 관객에게 제시하고 싶습니다.
양혜규: 의학이 발달해 삶이 양적으로 연장된 현대에 우리는 삶과 죽음의 교차로에서 보다 삶의 질에 주목하게 되는 듯 합니다. 심지어 안락사 등의 주제어를 통해 단순의 삶의 연장에대한 논의가 짙어지고 있지요. 현재 질병 혹은 의학 등의 생명에 관련한 주제어에 대해 어떤세대적인 관찰이 가능한지, 또한 작가라는 관찰자 입장은 어떤 것인지 들어보고 싶은데요.
이솝: 현대의학은 자본주의와 닮았습니다. 병원 안에서 몸을 들여다보는 방식은 세분화 되어있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삶의 연장을 꿈꿉니다. 주변 환경으로부터 통제, 차단된 병원은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질병만 느끼게 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몸과 진정으로 교감하는일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나약한 신체를 시스템에 순종하게 하고, 신체는 물론 우리의의지마저 그 시스템에 복종하고 순응합니다. 병원일기에 등장하는 드로잉을 통해 육체가다른 방식으로 치유될 수 있는 방법들을, 불가능한 것으로 상상하면서 해방감을느껴보고자 했습니다.
양혜규: 또한 전시라는 형태에 굳히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와 경험을 풀어 놓는다는 것의 미술적 의미를 좀 짚어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솝: 일기는 스스로에게 전하는 고백이라는 점에서 자화상 같은 것입니다.시간의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일기라는 매체를 통해서 하루하루의 층위를 되돌아 보는 것, 보다.본질적으로는 과거의 시간속 내면을 물질화하는 것에 주목하였습니다.
양혜규: 병원일기중에서 등장하는 “심장꽃” 혹은 “비행악기” 등이 약간은 초현실적인데 반해, “엄마의 시간” 등은 보다 구체적인 관찰을 반영하는 듯 합니다. 즉, 사실적인 관찰과초현실적 해석이 뒤섞여 있는 듯 합니다. 혹시 보다 작가의 해석이 필요한 첫번째 카테고리에 대해 좀 얘기해 주시겠어요?
이솝: 일상을 면밀히 관찰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의 세계가 자연스럽게 드러난 결과이며, 기본적으로 사실적인 관찰에 의존하면서 현실 밖으로 넘나들게 된 경우입니다. 몇 가지 드로잉들이 초현실적으로 보였을수 있었겠지만, 병원일기에서 사실적인 것과 초현실적인 것,이 두 가지는 기본적으로 관찰에 근거하여 드러난 결과물들입니다.
양혜규: 메갈로 폴리스의 진열장은 당시, 2010년 꿀풀이라는 전시장에서 처음 선보인게맞나요? 당시 전시장, 전시 문맥에 대해 좀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솝: 네, 메갈로 폴리스의 진열장은 2010년 ‘꿀풀’에서 처음 선보였고, 꿀풀은 최정화 작가가 이태원에 오픈한 복합문화공간이었습니다. 최정화 작가의 초대로 꿀풀 2층에서 3개월동안 작업을 했습니다. 2층 공간은 오래된 가정집 내부의 벽면을 허물어 남겨진 텅 빈공간으로, 한쪽 귀퉁이에 흰색 타일이 벽면의 절반가량 붙어있어서 주방과 욕실의 흔적이남아 있었습니다. 그곳을 둘러보면서 몸과 물의 자취를 느꼈고, 이것이 작업의 출발점으로발전해갔습니다.메갈로폴리스의 진열장은 욕망, 죽음, 자본 등의 도시에 대한 기억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작업입니다. 우리가 살았거나, 살고 있는 집, 도시, 끊임없이 복원과 건축을 반복하면서 쌓인 도시의 층위, 그리고 그 안에 몸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형적으로 묘사한 작업입니다.
양혜규: 사진으로만 보면 설치작인 듯 보이지만, 당시 퍼포머티브하게 작가 본인이 전시장에서 뭔가를 계속 하고 계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혹시 그 행위를 좀 설명해 주시면 어떨까요?이솝: 오픈 스튜디오 당시 꿀풀 2층 공간은 전시장이자 제 작업실이었기 때문에 작업을 하는동안 관람객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업의 과정을 사람들이 지켜볼 수 있었고 대화도나눌 수 있었습니다.
양혜규: 제가 기억하는 건 오징어를 꿰매고 계시는 듯 했는데… 제 기억이 맞나요? 어떤 생물적 비생물적 재료 등장했는지 궁금합니다.이솝: 오징어, 괴목, 원석, 십자가, 지렁이, 생선껍데기, 인조 손, 모래 등입니다. 오징어가사람의 피부를 닮았어요. 생선 눈알이 그로테스크하게 죽은 나무에 피어나는가 하면, 생선껍데기를 사용하기도 했고요. 그 외에 거꾸로 걸린 성모마리아 사진, 반짝이는 샹들리에를 지탱하고 있는 지렁이, 아슬아슬하게 유리컵 안에서 헤엄치 듯 죽어있는 물고기와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처럼 오징어의 껍데기를 바느질해서 원석이나 나무와 엮기도 하고,오징어가 십자가에 묶여있기도 했는데요…,불경스럽다는 느낌이 앞설 수도 있겠지만,믿음과 화해의 지점을 보여주고 싶었고,싸구려 악세사리들로 시각적인 반짝임을 극대화하고층층이 쌓인 진열장 안에 넣은 인체 모형과 비어있는 수족관으로 인공적인 적막함 더해몽환적이고 화려하게 엮어보고 싶었습니다.